감동 명언 교훈 통찰
침묵 본문
저자 소개: 엔도 슈사쿠 (Shūsaku Endō)
- 출생: 1923년 3월 27일, 일본 도쿄
- 사망: 1996년 9월 29일
- 종교: 가톨릭 (천주교) 신자
- 대표작: 『침묵』,『예수의 생애』 등
- 주제: 인간의 죄, 용서, 고통, 신앙, 일본 사회에서의 기독교적 인간성

오래 전 일본, 기독교가 금지되고 신자들이 박해받던 시대. 그 나라에 한 젊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로드리고. 그는 먼 포르투갈에서 왔지요.
그는 일본 땅 어딘가에 잡혀갔다는 자신의 스승, 페레이라 신부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숨어 들어왔습니다. 이미 그곳은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한창이었습니다. 성모상을 품고 숨어 지내는 일본 신자들, 후미에라 불리는 그림을 밟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백성들. 로드리고는 그 속에서 진실한 신앙과 무거운 고통을 함께 보게 되었죠.
하지만 곧 그도 붙잡히게 됩니다.
"네가 발을 들이면 그들은 산다. 밟지 않으면 죽는다."
막부의 관리가 그렇게 말하며,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금속판을 그의 앞에 놓습니다.
로드리고는 혼란에 빠집니다. 주님을 부정하는 것, 그것이 과연 신앙인가?
그러나 그의 눈앞에서 신자들이 하나 둘, 물고문과 교수형으로 쓰러집니다. 그들의 비명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신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로드리고는 마침내 한 발을 내딛습니다.
후미에 위로, 예수님의 얼굴 위로.
그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이런 음성을 들은 듯합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를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 뒤로 그는 일본 이름을 얻고, 신앙을 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겉으로는 배교한 자,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는 평생 신과 침묵 가운데 대화하며 살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배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왜 고통 앞에 침묵하는가?’라는 질문, 그리고
‘사랑 때문에 믿음을 버리는 것이 정말 죄인가?’라는 질문에
깊이 있게 다가가는 영적인 여정이죠.
여기서 후미에 사건에 대해서 좀 더 부연하자면
후미애 란 밟은 그림이란 뜻입니다.
에도 시대의 일본. 막부의 권력은 천황보다 강했고, 불교는 나라의 뿌리처럼 단단했다.
그 시대에 외국에서 건너온 이상한 종교, "기리시탄"이라 불린 기독교는 빠르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가난한 농민들, 차별받던 이들, 정의를 갈망하던 다이묘들까지
그들에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말은 혁명과 같았다.
그 믿음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피 묻은 길을 걸어가더라도 따라가고 싶은 길이었다.
그러나...
막부는 그것을 "신앙"이 아니라 "반역"이라 보았다.
신자들이 충성할 왕이 천황이나 쇼군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곧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후미에를 밟으시오.”
1629년, 나가사키를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 기묘한 정책이 시행된다.
그 이름은 후미에(踏み絵).
사람들 앞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형상을 새긴 금속판이 내려진다.
“밟으시오.”
“밟지 않으면, 당신도, 당신 가족도, 죽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신앙의 시험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양심을, 사랑을, 그리고 인간됨을 찢는 칼날이었다.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 판을 밟았다.
“하나님, 용서하소서…” 입술로 중얼이며, 마음으로 울며.
그러나 어떤 이들은 끝내 밟지 않았다.
그들은 물속에서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목에 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졌고,
가족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다 피를 토했다.
그들 중 몇몇은 카미사마… 고코로…라는 마지막 일본어 기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질문했다.
“왜 하나님은 침묵하십니까?”
“우리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왜, 왜 아무 말씀도 없습니까?”
그리고 그 물음은, 일본에 몰래 들어온 선교사들의 마음에도 박혔다.
예수회 신부들은 산속과 땅굴에서 숨어 다니며 신자들을 도왔지만, 그들 역시 언젠가 붙잡히게 된다.
그들 앞에도 똑같은 금속판이 내려졌다.
"당신이 밟으면, 고문받는 이들이 풀려납니다."
그들은 기도하며 망설인다.
“내가 신을 부정하는 이 발걸음, 이것이 사랑일 수 있을까?”
그 침묵 속에서, 어떤 이는 밟았고, 어떤 이는 죽었다.
후미에의 시절이 지나도 기독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십자가 대신 불상 안에 마리아 상을 숨겼고,
기도 대신 일본식 찬송을 흥얼거렸다.
그들은 "카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200년 넘는 세월 동안 몰래 신앙을 이어갔다.
세월이 흐르고, 메이지 유신 이후 기독교는 다시 일본 땅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후미에의 금속판은 지금도 박물관에 남아 있다.
그 위에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믿음을 지키려다 부서진 양심도,
살기 위해 꺾인 고개도,
그리고… 침묵 속에서도 사랑을 외쳤던, 그들의 눈물도 함께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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